머슴날


머슴날은 농가에서 머슴들의 수고를 위로해 주기 위해서 음식을 대접하며 즐기도록 하는 날로, 노비일 또는 일꾼날이라고도 한다. (음력 2월 1일)


가을 추수가 끝난 다음, 머슴들은 겨울 동안 크게 힘든 일없이 평안하게 지냈으나 2월에 들어서면 서서히 농사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고된 일이 시작되기에 앞서 일꾼들을 하루 쉬게 하여 즐겁게 놀도록 하는 것이다. 머슴들은 농악을 울리며 노래와 춤으로 하루를 즐기는데, 주인들은 머슴들에게 돈을 주어 쓰도록 한다. 많은 노비를 거느린 대가에서는 떡도 하고 많은 음식을 준비한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 記)》에 의하면 정월 대보름에 세웠던 볏가릿대를 내려서 그 속에 넣었던 곡식으로 송편 등의 떡 을 만들어 머슴들로 하여금 먹게 하였다고 한다. 크게는 손바닥만하게 작게는 계란만하게 만드는 데, 모두 반쪽의 둥근 옥모양으로 한다. 콩을 불려서 속을 만들어 넣고 시루 안에 솔잎을 겹겹이 깔고 넣어서 찐다. 푹 익힌 다음에 꺼내서 물로 닦고 참기름을 발라 먹었는데, 머슴들이 이 떡을 나이 수대로 먹으면 좋다고 한다.


한편 경상남도 의령군이나 양산군에서는 머슴날이 성인식의 의미를 지니기도 하였다. 소년들은 신체가 건강해도 어른들과 노동력을 맞교환하는 품앗이를 할 수 없었는데, 그래서 그 해에 20세가 된 젊은이는 이 날 동네 어른들과 성인 머슴들에게 술과 음식을 한턱 낸다. 그러면 그 해부터 는 어른으로 취급받아 성인과 품앗이를 할 수 있게 된다. 지방에 따라서는 20세가 되어도 머슴날 성인들에게 한턱 내지 않으면 성인 취급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머슴날에 이렇게 성인식을 하지 않았을 때에는 두레가 났을 때 하는 수도 있다.

 

이처럼 머슴날은 평소에 대접받지 못했던 머슴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어, 그 해의 농사에 전념하도록 하려는 의도에서 여는 농경 의례의 하나인 것이다.

 

2월 초하루에는 노래기를 퇴치하는 풍속도 전해진다. 노래기는 지방에 따라서는 '노내기'라고도 부르는데, 한자로는 백족충(百足蟲)·마현(馬)·마륙(馬陸)·환충(環蟲)이라고도 한다. 지네같이 생긴 벌레로 노린 냄새를 풍기며, 여름철이면 음습한 곳이나 짚 썩은 곳 등 지저분한 곳에서 주로 산다. 이날 집안을 청결하게 하고 종이를 잘라서 향낭각씨(香娘閣氏)의 노리개를 만들어 향낭각씨속 거천리(香娘閣氏速去千里)라는 한문 여덟 자를 써서 서까래에 매달아 둔다. 이는 "향낭각씨는 속히 천리 밖으로 도망가라"는 뜻으로 향낭각씨는 곧 노리개를 미화한 표현이다. 또는 소나무 잎사 귀를 추녀 끝에 꽂아 넣기도 한다.

 

 

 

 

 


영등제

 

(주로 음력 2월 15일이나 지역마다 다름)영등은 바람을 일으키는 신으로, 천계에 살고 있다가 2월 1일에 지상에 내려와서 20일에 다시 올라간다고 한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서 영등할머니는 딸 혹은 며느리를 데리고 2월 초하룻날에 내려 왔다가 3일, 15일 또는 20일에 하늘로 올라간다고 각기 다르게 믿고 있는데, 영등신앙은 주로 영남 지방과 제주도에 분포되어 있다. 영등할머니가 인간 세상에 내려올 때 딸을 데리고 오면 일기가 평탄하지만 며느리를 데리고 올 때에는 비바람이 몰아쳐 농가에 피해를 입힌다고 한다.

 

이는 인간관계에 있어 친정어머니와 딸은 의합하지만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는 불화와 갈등이 있는데 그에 비유해서 일기의 변화를 짐작한 결과이다.

 

일기가 불순하면 농작물이 피해를 입고 일기가 순조로우면 풍작을 바랄 수 있으니 영등 할머니는 바람과 농작의 풍흉과 관계 되는 농신(農神)의 성격을 가진다. 또한 영등할머니가 지상에 머물러 있는 동안은 거센 바람이 일어 난파선이 많이 생긴다고 한다. 그래서 어부들은 이 기간 동안은 출어를 삼가며 일을 쉰다.

 

이와 같이 영등할머니는 농신이자 풍신 (風神)이어서 바람을 몰고 오기 때문에 농촌이나 어촌에서는 풍재(風災)를 면하기 위해 영등할머니와 그 며느리에게 풍신제(風神祭)를 올리는데 이를 '바람 올린다'고 한다. 특히 바람이 심한 제주에서는 '영등제'를 지내는데 '영등할망'이라고 불리는 여신이 섬 주변의 해산물을 증식시켜 준다고 믿고 있다. 영등할머니가 인간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금속(禁俗)이 있다.

 

즉 영등할머니를 맞이하기 위하여 황토를 파다가 문 앞에 뿌려 신성하게 하며, 대나무에 오색헝겊을 달아 사립문에 매달고,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금하며, 창도 바르지 않고 고운 옷을 입는 것도 삼간다. 또 논밭 갈이는 물론, 땅을 다루거나 쌀을 집밖으로 내지 않는다. 한편 영등할머니가 하늘로 오르는 날 비가 오면 풍년이 들고, 조금 흐려도 길하다고 한다.


 
출처 : 국립민속박물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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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대보름

 

 

정월대보름의 어원


정월(正月)은 한 해를 처음 시작하는 달로서 그 해를 설계하고, 일년의 운세를 점쳐보는 달이다. 율력서(律曆書)에 의하면 "정월은 천지인(天地人) 삼자가 합일하고 사람을 받들어 일을 이루며, 모든 부족이 하늘의 뜻에 따라 화합하는 달"이라고 한다. 따라서 정월은 사람과 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하나로 화합하고 한해 동안 이루어야 할 일을 계획하고 기원하며 점쳐보는 달인 것이다.


정월 대보름날을 한자어로는 '상원(上元)'이라고 한다. 상원은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삼원(三元) 의 하나로, 삼원이란 상원(1월 15일), 중원(7월 15일), 하원(10월 15일)을 말한다. 도가에서 이 날은 천상(天上)의 선관(仙官)이 인간의 선악을 살핀다고 하는데, 그때를 '원(元)'이라고 한다.

 

한편으로 전통사회의 절일(節日)로서 정월 대보름(1월 15일)·7월 백중(7월 15일)·8월 한가위(8월 15 일) 등이 있는데, 이러한 명일(名日)은 보름을 모태로 한 세시풍속들이다. 대보름은 음력을 사용하는 전통사회에 있어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농경을 기본으로 하였던 우리 문화의 상징적인 측면에서 보면, 달은 생생력 (生生力)을 바탕으로 한 풍요로움의 상징이었다. 음양사상(陰陽思想)에 의하면 태양을 '양(陽)' 이라 하여 남성으로 인격화되고, 이에 반하여 달은 '음(陰)' 이라 하여 여성으로 인격화된다. 따라서 달의 상징적 구조를 풀어 보면 달-여신-대지로 표상되며, 여신은 만물을 낳는 지모신(地母神)으로서의 출산력을 가진다. 이와 같이 대보름은 풍요의 상징적 의미로 자리매김한다.

 

 

 

정월대보름의 유래


정월의 절일로는 설과 대보름이 있다. 태고적 풍속은 대보름을 설처럼 여기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에 간행된《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대보름에도 섣달 그믐날의 수세하는 풍속과 같이 온 집안에 등불을 켜 놓고 밤을 세운다는 기록이 보인다. 한편 중국에서는 한나라 때부터 대보름을 8대 축일의 하나로 중요하게 여겼던 명절이었다. 또한 일본에서도 대보름을 소정월(小 正月)이라 하여 신년의 기점으로 생각하기도 하였다. 이는 대보름날을 신년으로 삼았던 오랜 역법의 잔존으로 보이며,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보건대 대보름의 풍속은 농경을 기본으로 하였던 고 대사회로부터 풍농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고 하겠다.

 

 

 


정월대보름의 풍속


전통사회의 농가에서는 정월을 '노달기'라 하여, 농군들은 휴식을 취하며 농사준비를 한다. 예컨대 가마니짜기·새끼꼬기·퇴비만들기·농기구의 제작 및 수리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기는 휴식으로만 일관되지는 않는다. 새해를 맞이하여 새로운 시간의 창조를 위한 신성의례와 건강 하고 풍요로운 생활을 얻기 위한 다양한 제의(祭儀)와 점세(占歲) 및 놀이가 행해진다.

 

지방마다 차이가 있지만 농촌에서는, 마을공동제의로 대개 대보름날 자정을 전후로 하여 동제 (洞祭)를 지낸다. 가가호호 성의껏 제비를 갹출하여 제비(祭費)를 마련하고, 정결한 사람으로 제관 을 선출하여 풍요로운 생산과 마을의 평안을 축원하는 것이 바로 동제인 것이다. 또한 풍요다산 을 기원하는 놀이로 줄다리기를 들 수 있다.


줄다리기는 줄당기기라고도 하며 주로 농촌에 전승 되어온 점세적 농경의례(農耕儀禮)이다. 볏짚을 이용하여 암줄과 숫줄을 만든 후에 마을단위 혹은 군단위로 양편으로 나뉘어 줄을 당기게 되는데, 암줄이 승리를 해야 풍년이 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밖에도 풍농을 기원하는 풍속으로 지신밟기가 있는데, 지신밟기는 정초부터 대보름 무렵에 마을의 풍물패가 집집마다 돌며 흥겹게 놀아주고 축원해 주는 것을 말하는데, 지역에 따라서 마당밟기·매귀(埋鬼)·걸립(乞粒) 등으로 불리운다.

 

이와는 달리 개인적인 의례로서, 대보름날 아침 일찍 일어나면 '부스럼 깬다' 하여 밤·호두·땅 콩 등을 깨물며 일년 열 두달 종기나 부스럼이 나지 않도록 축원한다.


또 아침 일찍 일어나 사람 을 보면 상대방 이름을 부르며 '내 더위 사가라' 고 한다. 이렇게 더위를 팔면 그 해 더위를 먹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한편 아침 식사 후에는 소에게 사람이 먹는 것과 같이 오곡밥과 나물을 키에 차려주는데, 소가 오곡밥을 먼저 먹으면 풍년이 들고, 나물을 먼저 먹으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

아이들은 대보름날이 되면 '액연(厄鳶) 띄운다' 고 하여 연에다 '액(厄)' 혹은 '송액(送 厄)' 등을 써서 연을 날리다가 해질 무렵에 연줄을 끊어 하늘로 날려 보냄으로써 액막이를 한다.

주부들은 단골무당을 청하여 가신(家神)과 여러 잡신들을 풀어 먹임으로써 가내의 평안을 기원하는데, 이를 안택(安宅)이라고 한다.

대보름날 밤에는 달맞이 풍속이 있다. 달맞이는 초저녁에 높은 곳으로 올라서 달을 맞는 것을 말하며, 먼저 달을 보는 사람이 길하다고 한다. 아울러 달의 형체, 대소, 출렁거림, 높낮이 등으로 1년 농사를 점치기도 한다.
 


이와 더불어 달집태우기 풍속도 대보름날 밤에 행해지는데, 횃불싸움 과 쥐불놀이 등과도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짚이나 솔가지 등을 모아 언덕이나 산위에서 쌓아 놓 고 보름달이 떠오르기를 기다려 불을 지른다. 피어 오르는 연기와 더불어 달을 맞이하고, 쥐불놀이와 더불어 이웃마을과 횃불싸움을 하기도 한다. 
볏가릿대세우기는 보름 전날 짚을 묶어서 깃대 모양으로 만들고 그 안에 벼·기장·피·조의 이삭을 넣어 싸고, 목화도 장대 끝에 매달아 이를 집 곁에 세워 풍년을 기원하는 풍속이며, 복토훔치기는 부잣집의 흙을 몰래 훔쳐다 자기 집의 부뚜막에 발라 복을 기원하는 풍속이다. 용알뜨기는 대보름날 새벽에 제일 먼저 우물물을 길어와 풍년을 기원하며, 운수대통하기를 기원하는 풍속이다. 
 
다리밟기는 12다리를 밟으면 액을 면하고 다리병을 앓지 않는다고 한다. 곡식안내주기는 경남지방의 풍속으로 농가에서는 정초에 자기 집 곡식을 팔거 나 빌려주지 않는다. 이는 이시기에 곡식을 내게 되면 자기 재산이 남에게 가게 된다는 속신 때문에 행해진 풍속이다. 
사발점은 대보름날 밤에 사발에 재를 담아 그 위에 여러 가지 곡식의 종 자를 담아 지붕위에 올려 놓은 다음, 이튿날 아침 종자들의 행방을 보아 남아 있으면 풍년이고 날아갔거나 떨어졌으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나무그림자점은 한자 길이의 나무를 마당 가운데 세워 놓고 자정무렵 그 나무 비치는 그림자의 길이로써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풍속이다.

달붙이기는 대보름 전날 저녁에 콩 12개에 12달의 표시를 하여 수수깡속에 넣고 묶어서 우물속에 집어 넣어 콩알이 붙는가 안붙는가에 따라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풍속이다.

닭울음점은 대보름날 꼭두새벽에 첫닭이 우는 소리를 기다려서 그 닭울음의 횟수로써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풍속이다.


 
대보름날에 행해지는 놀이로는 사자놀이, 관원놀음, 들놀음과 오광대 탈놀음, 석전, 고싸움, 쇠머리대기, 동채싸움 등이 있다. 

 

 

 

 

정월대보름의 시절음식 
 

대보름날의 절식(節食)
햅찹쌀을 찌고, 또 밤·대추·꿀·기름·간장 등을 섞어서 함께 찐 후 잣을 박은 약반(藥飯)을 준비한다. 조선 후기에 간행된《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정월조에 의하면 "신라 소지왕(炤智王) 10년 정월 15일 왕이 천천정(天泉亭)에 행차했을 때 날아온 까마귀 가 왕을 깨닫게 하여, 우리 풍속에 보름날 까마귀를 위하여 제사하는 날로 정하여 찹쌀밥을 지어 까마귀 제사를 함으로써 그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다"라 한 것으로 보아 약반절식은 오랜 역사를 지닌 우리의 풍속이다.
이 약반은 지방에 따라 오곡밥·잡곡밥·찰밥·농사밥 등을 그 대용으로 즐기기도 한다. 대보름날엔 세 집 이상의 타성(他姓) 집 밥을 먹어야 그 해의 운이 좋다고 하며, 평상시에는 하루 세 번 먹는 밥을 이 날은 아홉 번 먹어야 좋다고 해서 틈틈이 여러번 먹는다.

또 대보름의 절식으로 복쌈이 있는데, 이는 밥을 김이나 취나물, 배추잎 등에 싸서 먹는 풍속을 말한다. 복쌈은 여러 개를 만들어 그릇에 노적 쌓듯이 높이 쌓아서 성주님께 올린 다음에 먹으면 복이 온다고 전한다. 그리고 대보름에 귀밝이술이라는 풍속이 있다. 동국세시기에는 "청주 한 잔을 데우지 않고 마시면 귀가 밝아진다. 이것을 귀밝이술이라 한다. 생각컨대 섭정규(葉廷珪, 中國 宋代人)의 해록쇄 사(海錄碎事)에 춘분 전후의 무일(戊日)에 귀밝이술[治聾酒]을 마신다고 했으나 지금 풍속에는 이를 보름날에 행한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출처 : 국립민속박물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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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날은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본래 설날은 조상 숭배와 효(孝)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먼저 간 조상신과 자손이 함께 하는 아주 신성한 시간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대부분이 도시 생활과 산업 사회라는 굴레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현대에 와서 설날은 또 다른 의미를 지니는데, 곧 도시 생활과 산업 사회에서 오는 긴장감과 강박감에서 일시적으로나마 해방될 수 있는 즐거운 시기라는 의미도 함께 지니게 된 것이다.
  설날은 세속의 시간에서 성스러운 시간으로 옮겨가는 교체기라고 할 수 있다. 즉 평소의 이기적인 세속 생활을 떠나서 조상과 함께 하며 정신적인 유대감을 굳힐 수 있는 성스러운 시간이 바로 설날인 것이다. 또한 개인적인 차원을 떠나서 국가 전체적으로 보더라도 설날은 아주 의미 있는 날이다. 국민 대부분이 고향을 찾아 떠나고, 같은 날 아침 차례를 올리고, 또 새옷을 즐겨 입는다. 여기에서 우리는 같은 한국사람이라는, 같은 한민족이라는 일체감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볼 때도 설날이 가지는 의미, 즉 공동체의 결속을 강하게 한다는 점에서는 단순한 명절 이상의 기능과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설날의 어원


설이란 새해의 첫머리란 뜻이고 설날은 그 중에서도 첫날이란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설날의 어원에 대해서는 대개 세 가지 정도의 설이 있다. 우선, 설날을 '낯설다'라는 말의 어근인 "설"에서 그 어원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설날은 '새해에 대한 낯설음'이라는 의미와 '아직 익숙하지 않는 날'이란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한다. 즉 설 날은 묵은해에서 분리되어 새로운 해에 통합되어 가는 전이 과정으로, 아직 완전히 새해에 통합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익숙하지 못한 그러한 단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설날은 "선날" 즉 개시(開始)라는 뜻의 "선다"라는 말에서 '새해 새날이 시작되는 날' 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선날"이 시간이 흐르면서 연음화(連音化)되어 설날로 와전되 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설날을 "삼가다[謹愼]" 또는"조심하여 가만히 있다"라는 뜻의 옛말인 "섧다"에서 그 어원을 찾기도 한다. 이는 설날을 한자어로 신일(愼日)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신일이란 ' 삼가고 조심하는 날'이란 뜻인데, 이는 완전히 새로운 시간 질서에 통합되지 않았기 때 문에 인간의 모든 언행을 삼가고 조심하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생긴 말이다. 한편 설날은 원일(元日)· 원단(元旦)·정조(正朝)·세수(歲首), 세초(歲初)·세시(歲時)·연두(年 頭)·연시(年始) 등의 한자어로도 불린다.

 

 

 


설날의 유래


설날이 언제부터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로 여겨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설날을 명절로 삼기 위해서는 우선 역법(曆法)이 제정되어야만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설날의 유래는 역법의 제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 나라가 나름대로의 역법을 가지고 있었음은 중국인들도 진작 인정하고 있었다.《삼국지 (三國志)》에 이미 부여족이 역법을 사용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고, 신라 문무왕 대에는 중국에서 역술을 익혀와 조력(造曆)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미루어 보더라도 우리 민족은 단순한 중국역법의 모방이 아니라 자생적인 민속력이나 자연력을 가졌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짐작할 수 있다. 또 신라의 독자적인 명절이라 할 수 있는 가위[嘉俳]나 수릿날의 풍속이 있었다는 사실에서도 우리 민족이 고유한 역법을 가졌을 가능성을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현단계에서는 중국 전래의 태양태음력이나 간지법(干支法) 이외에 우리 고유의 역법 제정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설날은 적어도 6세기 이전에 중국에서 태양태음력을 받아들인 이후 태양력을 기준으로 제정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한편 역사적인 기록을 통해서도 설날의 유래를 추측해 볼 수 있다.《수서(隨書)》를 비롯한 중국의 사서들에는 신라인들이 원일(元日)의 아침에 서로 하례하며 왕이 잔치를 베풀어 군신을 모아 회연하고, 이날 일월신을 배례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삼국사기(三國史記)》〈제사〉편에는 백제 고이왕 5년(238) 정월에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냈으며, 책계왕 2년(287) 정월에는 시조 동명왕 사당에 배알하였다고 한다. 이때의 정월 제사가 오늘날의 설과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으나 이미 이때부터 정월에 조상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것으로 보아 오늘날의 설날과의 유사성을 짐작할 수 있다. 신라에서는 제36대 혜공왕(765∼780) 때에 오묘(五廟:태종왕, 문무왕, 미추왕, 혜공왕의 조부와 부)를 제정하고 1년에 6회씩 성대하고도 깨끗한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데, 정월 2일과 정월 5일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설날의 풍속이 형성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설과 정월 대보름·삼짇날·팔관회·한식·단오·추석·중구·동지를 9대 명절로 삼았으며, 조선시대에는 설날과 한식·단오·추석을 4대 명절이라 하였으니, 이미 이 시대에는 설이 오늘날과 같이 우리 민족의 중요한 명절로 확고히 자리잡았음을 알 수 있다.

 

 

 

 

설날의 풍속


설날의 세시풍속으로는 차례, 세배, 설빔, 덕담, 문안비, 설그림, 복조리 걸기, 야광귀 쫓기, 청참, 윷놀이, 널뛰기, 머리카락 태우기 등 그 종류가 상당히 다양하다. 이 중에서 대표적인 몇 가지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설날 차례
 정월 초하룻날 아침 일찍이 각 가정에서는 대청마루나 큰방에서 제사를 지내는데, 제상 뒤에는 병풍을 둘러치고 제상에는 설음식[歲饌]을 갖추어 놓는다. 조상의 신주(神主), 곧 지 방(紙榜)은 병풍에 붙이거나 위패일 경우에는 제상 위에 세워 놓고 차례를 지낸다. 차례상을 차리는 방법은 가가례(家家禮)라 하여 지방이나 가문에 따라 다른데, 대체로 차례상 앞 첫째 줄에는 과일을 놓는다. 이때 붉은 과일은 동쪽에 흰 과일은 서쪽에 놓는다.
둘째 줄에는 채(菜)나 나물류 를 놓는데, 포(脯)는 왼편에 식혜는 오른편에 놓고, 세째 줄에는 탕(湯)을 놓는데, 다섯 가지 맛을 갖춘 탕으로 단탕(單湯)·삼탕(三湯)·오탕(五湯)· 칠탕(七湯) 등이라 하여 어탕 (魚湯)은 동쪽에 육탕(肉湯)은 서쪽에 소탕(蔬湯)은 가운데에 놓는다. 네째 줄에는 적(炙:불에 굽 거나 찐 것)과 전(煎:기름에 튀긴 것)을 벌여 놓는데, 어류는 동쪽에, 육류는 서쪽에 놓는다. 이 때 생선의 머리는 동쪽으로, 꼬리는 서쪽으로 향하게 한다. 다섯째 줄에는 밥과 국을 놓는데, 밥은 왼쪽에, 국은 오른쪽에, 또 떡은 오른쪽에 면(麵)은 왼쪽에 놓는다.

 

세배

설날 차례를 마친 뒤 조부모·부모에게 절하고 새해 인사를 올리며, 가족끼리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절하는데, 이를 세배(歲拜)라 한다.
세배가 끝나면 차례를 지낸 설음식으로 아침식사를 마친 뒤에 일가 친척과 이웃 어른들을 찾아가서 세배를 드린다.
세배하러 온 사람이 어른일 때에는 술과 음식을 내어놓는 것이 관례이나, 아이들에게는 술을 주지 않고 세뱃돈과 떡, 과일 등을 준다.

 
설빔

정월 초하룻날 아침에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모두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새옷을 갈아입는데, 이것을 설빔[歲粧]이라고 한다. 이 설빔은 대보름까지 입는 것이 보통이다.《열양세시기(洌 陽歲時記)》 원일(元日)조에 따르면 남녀노소가 모두 새옷을 입는 것을 '세비음(歲庇陰)[설빔]'이라 한다 하였다.

 

덕담
 덕담(德談)이란, 설날에 일가친척들과 친구 등을 만났을 때 "과세 안녕히 하셨습니까?"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 "새해에는 아들 낳기를 빕니다." 등과 같이 그 사람의 신분 또는 장유 (長幼)의 차이에 따라 소원하는 일로 서로 축하하는 것을 말한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원일 (元日)조에도 설날부터 사흘동안 시내의 모든 남녀들이 왕래하느라고 떠들썩하고, 울긋불긋한 옷 차림이 길거리에 빛나며, 길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게 웃으면서 "새해에 안녕하시오?" 하고 좋은 일을 들추어 하례한다.

예컨대 아들을 낳으시라든지, 승진하시라든지, 병환이 꼭 나으시라든 지, 돈을 많이 벌라는 말을 하는데 이를 덕담이라 한다고 하였다.또《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원일(元日)조에 연소한 친구를 만나면 "올해는 꼭 과거에 합격하시오." "부디 승진하시오." "생남 하시오." "돈을 많이 버시오." 하는 등의 말을 하는데, 서로 축하하는 이 말을 덕담이라 한다고 하였다. 

 

문안비
설날에 여자는 세배를 하러 돌아다니지 않으나, 중류 이상 양반 가문의 부인들은 자기 대신으로 잘 차려 입은 젊은 여종을 일가친척이나 그 밖의 관계 있는 집에 보내어 새해 인사를 전갈(傳喝)하는데, 이때 새해 인사를 다니는 계집종을 일컬어 문안비(問安婢)라 한다. 문안을 받는 집에서는 반드시 문안비에게 세배상을 한 상 차려 주며, 또 약간의 세뱃돈도 준다.
 
설그림[歲畵]
조선조 말까지의 풍속에, 설날 도화서(圖畵署:그림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서) 에서 수성(壽星) 선녀와 직일신장(直日神將)을 그려서 임금에게 드리고, 또 서로 선물로 주기도 하는데, 이를 '설그림(歲畵)'이라고 한다. 이는 축수(祝壽)하는 뜻을 표시하는 것이다. 수성이란 장 수를 맡은 노인성(老人星)을 말하는 것이고, 직일신장은 그날을 담당한 신인데, 이는 모두 도교의 신이다. 한 사람은 도끼를, 한 사람은 절월(節鉞)을 들고 황금 갑옷을 입은 두 장군의 화상(畵像)을 한자 남짓 되게 그려서 대궐문 양쪽에 붙이는데, 이것을 '문배(門排)' 또는 설그림이라고 한다. 또한 붉은 도포와 검은 사모를 쓴 형상을 그려 대궐의 겹대문에 붙이기도 하며, 종규(鐘)가 귀신 잡 는 형상을 그려서 문에 붙이고, 또 귀신의 머리를 그려 문설주에 붙이니, 이것들은 다 사기(邪氣) 와 역신을 물리치는 뜻이다. 그러므로 모든 궁가(宮家)와 척리(戚里:임금의 內戚·外戚) 집 문짝에도 붙이니, 여염집에서도 이를 본받아 그림을 문에 붙였던 것이다.

 

복조리
설날 이른 아침 또는 섣달 그믐날 밤 자정이 지나서,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어 엮어서 만든 조리를 사서 벽에 걸어 두는 습속이 있는데, 이것을 복조리라고 한다.

전국에서 조리 장사가 이것을 팔기 위하여 초하루 전날 밤부터 밤새도록 인가 골목을 돌아다닌다. 이러한 풍속은 조리가 쌀을 이는 기구이므로 그해의 행운을 조리로 일어 취한다는 뜻에서 비롯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설날에 1년 동안 사용할 조리를 그 수량대로 사서 방 한쪽 구석이나 대청 한 귀퉁이에 걸어 두고 하나씩 사용하 면 1년 동안 복이 많이 들어온다는 민간 신앙도 있다.  

 

 야광귀 쫓기
설날 밤에 야광(夜光)이라는 귀신이 인가에 들어와 사람들의 신을 신어 보아서 자기 발에 맞으면 신고 간다는 속설이 있는데, 만일 신을 잃어버리면 신 임자는 그해 운수가 나쁘 다고 한다. 그러므로 아이들과 어른들이 모두 신을 방안에 들여놓는다.

이날 밤에는 모두 불을 끄고 일찍 자는데, 야광귀를 막기 위해 대문 위에다 체를 걸어 두니, 이것은 야광귀가 와서 체의 구멍을 세어 보다가 잘못 세어 다시 또 세고, 세고 하다가 신을 신어 보는 것을 잊어버리고, 새벽닭이 울면 물러가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청참
새해 첫새벽에 거리로 나가 방향도 없이 돌아다니다가 사람의 소리든 짐승의 소리든 처음 들리는 그 소리로써 그해 1년 중 자기의 신수(身數)를 점치는데, 이것을 청참(聽讖)이라고 한다. 까치 소리를 들으면 그해는 풍년이 들고 행운이 오며, 참새 소리나 까마귀 소리를 들으면 흉년이 들고 불행이 올 조짐이라고 한다. 그리고 먼 데서 사람의 소리를 들으면 풍년도 아니고 흉 년도 아닌 평년작이 들고, 행운도 불행도 없이 지낸다고 한다.
 

 

 

 


설날의 시절음식


 설날의 음식을 통틀어 '설음식' 또는 '세찬(歲饌)'이라 하고 설날의 술을 '설술[歲酒]'이라고 한다. 설음식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떡국이다. 떡국은 흰쌀을 빻아서 가는 체로 치고 그 쌀가루를 물에 반죽하여 찐 후 안반에 쏟아 놓고 떡메로 수없이 쳐서 찰지게 한 다음, 한덩어리씩 떼어가지고 손으로 비벼 그것을 굵다란 양초가락만큼씩 길게 만든다.
이것을 타원형으로 얇게 썰어서 장국에 넣어 끓이고, 쇠고기·꿩고기로 꾸미하여 후추가루를 뿌린다. 이것은 정월 초하루 제사때 에 제물(祭物)로도 차리고 또 손님에게도 낸다. 설날의 떡국은 지금은 쇠고기나 닭고기로도 끓이지만 옛날에는 꿩고기로 많이 하였다.

설날에 흰 떡국을 끓여 먹는 것은 고대의 태양숭배 신앙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데, 설날은 새해의 첫날이므로 밝음의 표시로 흰색의 떡을 사용한 것이며, 떡국의 떡을 둥글게 하는 것은 태 양의 둥근 것을 상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설날에 마시는 술은 데우지 않고 찬 술을 마시는데,《경도잡지(京都雜誌)》에는 "술을 데우지 않는 것은 봄을 맞이하는 뜻이 들어 있는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출처 : 국립민속박물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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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에서 곡우까지

 

주로 봄철에 해당되는데, 입춘, 우소, 경첩, 춘분, 청명, 한식, 곡우 등의 절기가 포함되어 있다.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농사일을 준비하고 씨를 뿌리는 계절이었는데, 이를 나타내는 날도 있었다.
식목일은 신라가 당나라의 세력을 몰아내고, 삼국통일을 완수한 677년(문무왕 17) 2월 25일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또한 조선 성종이 세자와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동대문 밖의 선농단에 나아가 제사를 지내고 왕실의 의례나 제례에 드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임금이 농사를 짓던 토지를 직접 논갈이란 날인 1343년(성종 24) 3월 10일에 해당되는 날이기도 하다.

 

 

1. 봄을 부르는 - 입춘

 

우리 나라는 예로부터 1년을 춘 하 추 동의 네 계절로 나누고, 다시 그것을 24절기로 나눠 놓았다.
한 절기와 다음 절기와의 사이는 평균 15.2일쯤 된다. 따라서 대개의 경우 한 달에 절기가 두 번쯤 들어 있다. 그러나 어느 절기가 그 달의 가운데에 들어 있으면 그 달에는 절기가 한 번 밖에 들지 않는 수도 있다. 입춘은 대개의 경우 대한과 우수의 가운데에 들어 있다.
24절기는 양력으로도 따지지만 주로 음력으로 따져서 행사를 치른다. 우리 나라는 예로부터 농업을 주업으로 하는 농업국이므로, 이 24절기를 따지고 절기에 따라 농경을 해왔고, 지금도 이 절기에 따라 농사를 짓고 있다. 이 절기의 순환 이용은 농경에서만 쓴 것은 아니다. 어업에서도 많이 쓰고 그 밖의 관혼상제를 치르는 데에도 절기를 따져서 썼다. 입춘은 봄이 시작되는 날이라고 정하여 입춘이라 하였다.
원래 고대 중국의 역법에서부터 비롯된 것으로 천세력에 정해져 있다. 입춘은 연초의 경우가 많으나 때로는 섣달에 들어있는 수도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입춘을 중요시 않지만, 문화권이 같은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에서는 이 날을 기쁜 날로 정하여 여러 가지 민속적 행사를 한다. 이 날을 기쁜 날로 정하여 여러 가지 민속적 행사를 한다.
입춘 날부터 봄이라고는 하지만 추위는 아직도 강하다. 옛날 중국에서는 입춘 추위 속에 움트는 봄의 소리를 다음 세가지 움직임으로 설명했다. 첫째 동풍이 붙어 언 땅을 녹이고, 둘째 동면하던 벌레가 움직이기 시작하며, 셋째 물고기가 얼음 밑을 돌아다닌다고 했다.

우리 세시풍속에서 입춘은 농사준비를 시작하는 날이다.
입춘을 기준으로 88일째 되는 날, 밭에 씨를 뿌리고 210일째에는 농작물과 태풍 피해에 대비해야 한다.

 

 

 


2. 꽃샘추위 속에 봄비가 내리고 - 우수

 

입춘과 경칩 사이에 있으며 입춘 15일 후인 음력 2월 19일 또는 20일이 된다.
흔히 양력 3월에 꽃샘추위라 하여 매서운 추위가 잠시 기승을 부리지만 이맘때면 날씨가 많이 풀리고 봄기운이 돋고 초목이 싹튼다. 예로부터 '입춘이 지나면 동해동풍에 차가운 북풍이 걷히고 동풍이 불면서 얼었던 강물이 녹기 시작한다'고 했다. 더불어 '우수, 경칩이면 대동강 물도 풀린다.'고 했다.
이처럼 우수가 되면 눈이 비로 바뀌면서 얼었던 땅이 녹고, 따뜻한 봄비가 내린다.
이때부터 농부들은 논밭에 있는 병충해 예방을 위해 논밭두렁 태우기를 하는 등 본격적 인 영농준비에 들어간다.

 

 

 


3. 동물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 경칩

 

우수와 춘분 사이에 들어 있으며 태양의 황경이 345°에 해당될 때이다.
음력으로는 2월중에, 양력으로는 3월 5일경이 된다.
경칩은 글자 그대로 땅속에 들어가서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무렵이 된다.
개구리들은 번식기인 봄을 맞아 물이 괸 곳에 알을 까놓는데, 그 알을 먹으면 허리 아픈데 좋을 뿐 아니라 몸을 보한다고 해서 경칩일에 개구리알을 먹는 풍습이 전해 오고 있다.
경칩에는 흙일을 하면 탈이 없다고 해서 벽에 흙을 바르거나 담을 쌓기도 한다.
경칩 때 벽을 바르면 빈대가 없어진다고 해서 일부러 흙벽을 바르는 지방도 있다.
빈대가 심한 집에서는 물에 재를 타서 그릇에 담아 방 네 귀퉁이에 놓아두면 빈대가 없어진다는 속설이 전한다. 한편, 경칩날에 보리싹의 성장을 보아 그 해 농사의 풍흉을 예측 할 수 있다고도 한다.

 

 

 


4. 낮과 밤이 같은 날 - 춘분

 

태양의 중심이 춘분점에 왔을 때이며, 음력 2월, 양력 3월 21일 경이다.
태양은 적도 위를 똑바로 비추고 지구상에서는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
춘분점은 태양이 남쪽에서 북쪽을 향하여 적도를 통과하는 점이다.
춘분을 전후하여 철 이른 화초는 파종을 한다.
그리고 아울러 화단의 흙을 일구어 얼마 남지 않은 식목일을 위하여 씨를 뿌릴 준비를 한다.
춘분에 즈음하여 농가에서는 농사 준비에 바쁘다. 특히 농사의 시작인 첫 논밭갈이를 엄숙하게 행하여야만 한해 동안 걱정없이 풍족하게 지낼 수 있다고 믿는다.

 

 

 


5. 봄일을 시작하는 인화의 날 - 청명

 

청명은 한식 하루 전날이거나 때로는 한식과 같은 날이 된다. 대부분의 농가에서는 청명일을 기해 봄일을 시작하므로 이 날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청명은 글자 그대로 날씨가 맑고 밝은 날이라는 Œ裏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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